시장의 물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흐르는가

주식과 암호화폐 가격을 움직이는 가장 공통된 힘을 하나만 꼽으라면 ‘유동성(liquidity)’입니다. 유동성은 시장에 풀린 돈의 양, 그리고 그 돈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다니는지를 뜻합니다. 물이 차오르면 대부분의 배가 떠오르듯, 유동성이 늘어나면 위험자산(risk assets) 전반에 바람이 불고, 반대로 물이 빠지면 좋은 배도 모래톱에 걸립니다. 이 글은 글로벌 유동성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들을 쉽게 정리하고, 그 변화가 주식시장과 암호화폐 시장에 어떻게 전달되는지, 과거 사례와 2025년 시나리오까지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글로벌 유동성을 읽는 핵심 지표

G5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합계 (G5 CB Balance Sheets)

미 연준(Fed),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중국인민은행(PBoC), 영란은행(BoE)의 자산 합계는 전 세계 유동성의 ‘큰 물줄기’입니다. 양적완화(QE)로 자산이 늘면 시중에 기초 유동성(base liquidity)이 공급되고, 양적긴축(QT)으로 줄면 흡수됩니다. 추세 방향(전년동기 대비, YoY)과 기울기(증가/감소 속도)가 중요합니다.

왜 중요한가: 대형 중앙은행의 자산 증감은 글로벌 달러/유로/엔 등 기축통화 유동성을 직접 좌우해 주식과 암호화폐의 위험 선호(risk appetite)에 일괄적인 영향을 줍니다.

글로벌 M2 (Global M2)

주요국의 광의통화(M2)를 합산한 지표입니다. 예금, 현금 등 넓은 의미의 돈의 양을 보여줍니다. M2 증가율이 둔화되면 ‘물의 속도’가 느려지고, 증가율이 반등하면 ‘잔물결’이 커집니다.

왜 중요한가: 실물·금융 전반의 돈의 풀(pool)을 보여주는 근본 지표로, 몇 분기 시차를 두고 자산가격과 상관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 순유동성(Net Liquidity: Fed BS − TGA − RRP)
  • Fed BS: 연준의 자산(주로 보유 국채·MBS)
  • TGA: 재무부 일반계정(Treasury General Account). 정부가 예금처럼 쌓아둔 돈
  • RRP: 역레포(Reverse Repo) 잔액. 돈이 머무는 ‘주차장’ 순유동성 = 연준자산 − TGA − RRP로 단순화해 보는 시장 유동성의 즉시성 지표입니다. TGA가 늘거나 RRP가 커지면 시중에서 돈을 ‘빼간’ 효과가 납니다.

왜 중요한가: 월 단위로 변할 수 있어 위험자산의 단기 변동과 상관이 큽니다. 암호화폐는 특히 이 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관찰됩니다.

달러인덱스(DXY)와 실질금리(US 10Y TIPS Real Yield)

강한 달러(높은 DXY)와 높은 실질금리는 글로벌 달러 유동성을 조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둘이 동시에 상승하면 대체로 위험자산이 압박을 받습니다.

왜 중요한가: 전 세계 달러 부채를 보유한 기업·국가의 자금 사정이 타이트해져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촉발되기 쉽습니다. 암호화폐는 이 구간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변동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로벌 금융여건지수(FCI: Financial Conditions Index)

골드만삭스(GS) Global FCI, 블룸버그, BIS 등 다양한 버전이 있습니다. 금리, 스프레드, 주가, 환율 등을 종합해 ‘자금 조달이 쉬운지/어려운지’를 점수화합니다. 수치가 높아지면(긴축) 위험자산에 역풍, 낮아지면(완화) 순풍입니다.

왜 중요한가: 개별 지표를 종합해 한눈에 보기 좋고, 정책 변화의 효과가 시장 전반에 어떻게 퍼지는지 가늠하기 좋습니다.

중국 신용충격(Credit Impulse)과 사회융자총액(TSF)

중국의 신용공급 변화율(크레딧 임펄스)은 글로벌 제조업·원자재·신흥시장 유동성을 6~9개월 선행하는 지표로 자주 활용됩니다.

왜 중요한가: 세계의 ‘수요 측’에 돈이 언제 풀리는지 보여주며, 원자재·반도체·신흥시장 주식뿐 아니라 비트코인의 방향성에도 파급력이 관찰됩니다.

달러 자금 조달 스트레스
  • 크로스커런시 베이시스(Cross-currency basis)
  • OIS-국채 스프레드(SOFR-OIS 등)
  • TED 스프레드(과거 관용) 이들 스프레드가 급등하면 단기 달러 조달이 막혀 유동성이 급격히 위축됩니다.

왜 중요한가: 갑작스러운 변동성 스파이크(VIX 급등)와 함께 위험자산 동반 조정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입니다.

크립토 네이티브 유동성
  •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Stablecoin Market Cap: USDT, USDC 등)
  • 파생시장 펀딩비(Funding Rate), 현·선물 베이시스
  • 현물 ETF 순유입(Spot ETF Flows) 왜 중요한가: 암호화폐 자체 생태계의 ‘물의 높이’를 측정해, 글로벌 매크로 유동성과의 공통 요인 외에 독립적인 유입/유출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유동성과 주식/암호화폐의 상관관계

공통점: 유동성은 멀티플과 스프레드를 움직인다
  • 주식: 유동성 완화는 할인율 하락과 위험프리미엄 축소로 PER 등 밸류에이션 멀티플을 밀어올립니다. 실적이 평이해도 지수는 오를 수 있습니다.
  • 암호화폐: 현금흐름이 없는 자산으로 ‘유동성 민감도(High Beta to Liquidity)’가 매우 큽니다. 달러가 약해지고 실질금리가 낮아질수록 비트코인/알트코인의 랠리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차이점: 민감도와 반응 속도
  • 암호화폐는 24/7 거래, 레버리지 용이, 유입 자금의 체급 대비 시장 규모가 작아 변동성이 주식 대비 훨씬 큽니다.
  • 주식은 기업 실적(EPS), 배당, 자사주 매입 등 펀더멘털이 유동성 효과를 누르는 완충장치로 작동합니다.
시차(Lead-Lag)
  • 글로벌 M2, G5 BS와 주식: 3~6개월 선행 경향이 자주 관찰됩니다.
  • 중국 크레딧 임펄스: 글로벌 제조업·원자재 6~9개월 선행, 신흥시장과 비트코인도 동조.
  • 미국 순유동성: 주식·크립토 단기 방향성에 민감, 특히 크립토에 더 빠르게 반영.

중요한 점: 상관관계는 ‘구간 의존적(regime-dependent)’이며, 정책·규제·특이 이벤트(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로 일시적으로 깨질 수 있습니다.

과거 사례로 보는 유동성-가격의 연결고리

  • 2008–2009 금융위기 이후: 미 연준의 대규모 QE로 G5 대차대조표가 급증, S&P 500과 신흥시장 주식 반등. 비트코인은 막 태동했지만, 이후 사이클마다 유동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특성이 확인됨.
  • 2013 테이퍼 텐트럼: QE 축소 시사만으로도 금융여건 급격한 긴축, 신흥시장과 위험자산 조정.
  • 2018 QT 본격화: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와 달러 강세가 겹치며 위험자산 변동성 확대.
  • 2020 팬데믹: 사상급 QE와 재정 부양으로 M2 급증, 주식·암호화폐 동반 강세.
  • 2022 긴축 사이클: 공격적 금리인상과 QT, 실질금리 급등·달러 강세로 주식 조정, 암호화폐는 더 큰 폭의 하락.
  • 2024 암호화폐 ETF 도입: 크립토에 구조적 자금 유입 경로가 생기며, 매크로 유동성이 완전히 우호적이지 않은 구간에서도 선택적 강세가 관찰. 다만 달러 강세·실질금리 급등 구간에선 여전히 변동성 확대.

이력은 하나의 패턴을 말합니다. “유동성 순풍이 불면 둘 다 오른다. 역풍이 불면 크립토가 더 크게 흔들린다.”

2025년을 보는 세 가지 시나리오

1) 점진적 완화(기본 시나리오)
  • 내용: 인플레이션이 점진적으로 둔화, 주요 중앙은행이 완만한 금리 인하와 QT 속도 조절. 재무부 발행 구조가 단기물 비중을 늘려 TGA·RRP 관리로 순유동성에 중립~우호적.
  • 함의: DXY 약보합, 실질금리 완만한 하락. 글로벌 FCI 완화. 주식 멀티플 지지, 크립토는 스테이블코인 시총 증가와 ETF 순유입이 결합되면 고베타 상승.
2) 끈적한 인플레이션(리스크 시나리오)
  • 내용: 서비스 물가·임금이 높은 수준을 유지, 정책 금리 하향이 지연되고 장기물 금리·실질금리 상승. 강한 달러 복귀.
  • 함의: FCI 재긴축, 밸류에이션 압박. 주식은 이익 모멘텀 좋은 섹터 중심의 ‘좁은 장세’, 크립토는 변동성 확대·체급 작은 알트 부진. 유입이 ETF 등 특정 채널에 집중될 수 있으나, 지수적 강세는 제한.
3) 유동성 쇼크(테일 리스크)
  • 내용: 지정학 충격, 크레딧 이벤트, 달러 자금 조달 스트레스(크로스커런시 베이시스 급변) 또는 BoJ 정상화로 엔캐리 언와인드가 촉발.
  • 함의: ‘현금이 왕’ 구간. 디레버리징으로 위험자산 동반 급락 가능. 이후 정책 대응(QE 재개·스왑라인 확대 등)이 확인되면 반등 기회.

현실은 이들의 조합입니다. 2025년 초반 국면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DXY, 실질금리, 순유동성, FCI의 동시방향을 보면 비교적 명확해집니다.

개인 투자자를 위한 간단 대시보드

주 1회 체크(간단)

  • DXY: 강세(↑)면 경계, 약세(↓)면 순풍 가능성
  • 미국 10년물 실질금리(TIPS): 하락(↓)은 위험자산 우호
  • VIX: 급등은 유동성 경색 신호
  • 스테이블코인 총시총: 상승 추세면 크립토 내부 유동성 개선

월 1회 체크(심화)

  • G5 중앙은행 자산 합계 YoY: 플러스 전환 여부
  • 미국 순유동성(Net Liquidity): 추세와 변곡
  • GS Global FCI(또는 유사 지표): 완화/긴축 방향
  • 중국 크레딧 임펄스/TSF: 반등 시점(6~9개월 후 위험선호 회복 가능성)
  • 미국 재무부 발행 믹스: 단기물 비중 확대는 단기 유동성에 중립~우호

포지셔닝/리스크 관리 팁

  • 같은 방향의 신호가 3개 이상 일치할 때 비중 조절을 고려
  • 크립토는 변동성 한도가 크므로 현금·스테이블코인 비중과 레버리지 한도를 사전에 정량화
  • 이벤트 리스크(중앙은행 회의, CPI, 고용지표, 규제 발표) 전후로 베타 노출을 축소/확대하는 룰 기반 접근

균형 있게 보기: 상관관계의 함정과 예외

  • 상관관계는 영구적이 아니다: ETF 승인, 대형 기술 혁신(AI 수요 폭발), 자사주 매입 확대, 규제 변화 등은 유동성 사이클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 실물 이익(EPS)과 생산성: 장기 주가의 핵심은 이익입니다. 유동성은 멀티플을 움직이지만, 사이클이 꺾이면 이익이 받쳐주지 못하는 자산부터 조정됩니다.
  • 유동성의 ‘질’: 같은 규모라도 어디에 공급됐는지(가계·기업·정부, 국내·해외)에 따라 자산별 파급력이 다릅니다.
  • 지역·통화 분화: 달러 강세 국면에서도 특정 로컬 유동성(예: 일본, 중동의 자본 흐름)이 특정 섹터·테마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핵심 요약

  • 글로벌 유동성의 큰 축은 G5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글로벌 M2, 미국 순유동성, DXY·실질금리, FCI입니다.
  • 유동성 완화는 주식 멀티플과 크립토 가격을 동반 견인하는 경향이 있고, 긴축은 반대로 작용합니다. 크립토는 민감도가 더 큽니다.
  • 과거 사이클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2025년의 방향도 이 지표들의 동시 신호에서 출발합니다.
  • 간단한 대시보드로 ‘물의 높이’를 정기 점검하고, 일치 신호에 기반한 비중 조절과 변동성 관리가 실전적 해법입니다.

용어 정리

  • 유동성(Liquidity): 시장에서 자금이 얼마나 풍부하고 잘 거래되는지의 정도
  • 양적완화/긴축(QE/QT):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축소를 통한 유동성 공급/흡수
  • G5 중앙은행 대차대조표(G5 CB Balance Sheets): Fed, ECB, BoJ, PBoC, BoE 자산 합계
  • 글로벌 M2(Global M2): 주요국 광의통화 합계
  • 순유동성(Net Liquidity): Fed 자산 − 재무부 일반계정(TGA) − 역레포(RRP)
  • TGA(Treasury General Account): 미국 재무부의 중앙은행 내 예금 계정
  • RRP(Reverse Repo): 민간이 중앙은행에 단기 자금을 예치하는 메커니즘
  • 달러인덱스(DXY): 달러의 상대적 강도를 나타내는 지수
  • 실질금리(Real Yield): 명목금리 − 기대 인플레이션(예: 10년 TIPS 수익률)
  • 금융여건지수(FCI): 금리·스프레드·환율·주가를 종합한 자금 여건 지표
  • 크레딧 임펄스(Credit Impulse): 신용공급의 증가 속도 변화율
  • 크로스커런시 베이시스(Cross-currency Basis): 통화 간 스왑 거래에서 나타나는 자금조달 왜곡 지표
  •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Stablecoin Market Cap): 달러 연동 코인의 총규모
  • 펀딩비(Funding Rate): 선물-현물 간 수요 균형을 맞추기 위한 파생시장의 주기적 비용/수익
  • 현물 ETF 순유입(Spot ETF Flows): 상장지수펀드로 유입되는 현금흐름

읽기 쉬운 지표 몇 개만 꾸준히 트래킹해도 시장의 ‘물길’이 보입니다. 방향이 보이면, 속도는 포지션 관리로 조절하면 됩니다.